사람이 살다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날을 생각하면 창피함으로 얼굴이 화끈거려서 지금도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일들이다.
이토록 우리들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 중 최고는 무엇일까? 그렇다. 아마 게중에 제일은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차이는 경험일 것이다.
짝사랑으로 수많은 밤을 세웠거나, 혹은 그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무한정 썸을 타며 줄다리기를 했던 당신. 오늘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건만 돌아오는 것이 차디찬 거절일 때 당신이 느꼈을 정신적 충격은 그야말로 지상에서 24시간 지옥체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남자에게 차이는 경험은 매우 끔찍한 경험이어서, 꿈꾸던 회사에 입사지원했다가 떨어졌다거나, 만원 전철에 탔다가 출입문에 엉덩이가 낀 쑥스런 경험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잔인한 경험이다. 그런 정신적 내상과 트라우마는 이후 연애와 인간관계에 큰 악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용기를 내어 고백했던 그 짧은 순간들을 매우 긴 시간을 두고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는 이제 다시는 자기 삶에 남자에게 먼저 고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은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남자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차였다고 기죽을 필요 전혀 없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사랑할 용기, 다가서는 용기, 고백할 용기를 가진 당신은 앞으로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사랑의 전장에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고백했다 차이는 경험은 이후 정말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알콩달콩한 사랑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할 사랑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차여도 기죽지 말고 앞으로도 꾸준히 용기있게 사랑을 쟁취해 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4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1. 고백한 당신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한 남자를 마음에 품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기로 결정하고 운명의 그 날에 고백하기까지 당신은 많은 시간 고민과 갈등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백했다가 거절을 당하게 되면 일단 큰 충격에 빠져 앞이 깜깜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든다.
그리고 쥐구멍이라도 숨을 곳이 있다면 찾아들어가고 싶은 깊은 수치감을 느끼게 되고,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양심의 가책과 자책으로 스스로를 자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숨을 돌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이 상황에 대해 찬찬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이 사태를 몰고온 당신에게 과연 무슨 죄가 있었는지 말이다.
일단 철저히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가보자. 당사자가 당신이 아닌 당신이 가장 아끼는 친구가 동일한 상황을 겪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이렇게 고백했다 거절당해 상처 입은 그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우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한 사실이 잘못인가? 한창 피가 끓는 새 파랗게 젊은 팔팔한 청춘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다는 것에 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 아니, 전혀 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팔팔한 청춘남녀가 사랑할 능력과 마음을 상실한 것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고백한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을 했더라도 조용하게 사랑했어야지 여자가 경박하게 먼저 고백하면 되겠어?” 하고 말이다. 우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회 통념상 고백은 남자가 하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담고 있는 본뜻은 여자가 먼저 고백하면 불이익이 많기 때문에 남자가 고백을 하도록 유도를 하라는 말이지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곧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고백을 하면 연애의 결과를 놓고 볼 때 효과가 적다는 뜻이지 이러한 여자의 적극적 행동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라는 뜻은 전혀 아니라는 의미이다.
오히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혼자만의 사랑이다. 쌍방의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원맨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이젠 연애 결과의 효과적 측면에서도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야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초식남을 비롯한 요새 나약한 남자들의 경우에는 여자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사랑도 할 수가 없다. 여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멍석을 깔아주고 솔선수범하는 마음으로 먼저 고백하여 연애의 물꼬를 터주지 않으면 아예 연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연애가 그 시대적 상황과 환경의 유산이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이러한 현실적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요즘엔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것을 꼭 비효율적이다’라고도 볼 수도 없다.
그리고 혹자는 “당신 주제에 그렇게 괜찮은 남자에게 고백을 하니 당연히 거절을 당하는 거지 뭐가 억울하냐? 당신은 주제파악도 못하냐?”하고 말하는데 이 말도 얼핏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여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런 말들은 우리 사회의 헌법적 가치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멍멍이 소리일뿐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꾸고 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젊은 청춘 남녀라면 어디 한 구석이라도 나보다 나은 상대를 만나 행복한 연애, 행복한 결혼을 꿈꿔야지 꼭 자신보다 못난 사람이나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 끼리끼리 연애를 해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인 것이다. 지금이 한창 신분제가 유지되던 고대 이집트나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참 고루한 생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주변에서 모두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들을 하니 다수결로 따져서 내가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고백하기 전까지는 그 남자가 거절할지 제안을 받아들일지 알 수도 없는데 일단 결과가 나쁘니 무조건 내가 잘못한 것일까? 결국 결과가 나쁘면 이 세상 모든 일들은 다 유죄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다 말도 안 되는 주장들뿐이다.
그러니 고백했다가 차였다고 기죽을 필요 전혀 없다. 아마 긴 시간을 들여 돌이켜 보아도 당신의 잘못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2. 고백은 시간을 절약해 준다
왜 짝사랑하는 여자는 맨날 짝사랑만 하고, 요새 왠만한 사람들은 다 한번 즈음 해본다는 환승연애는 커녕 남들처럼 그 흔한 제대로 된 썸 하나 타보지 못하는 걸까?
그저 오늘도 독수공방하며 보름달 달 밝은 밤에 치킨이나 뜯으며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져 아까운 청춘의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건 당신이 일종의 연애지옥인 짝사랑의 무한루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애인을 만나고, 또 그 친구가 그 애인과 헤어지고, 또 그 친구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또 그 친구가 그 새로운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또 다른 친구가 그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측 남자 친구와 눈이 맞아 연애를 시작하고, 그 연애하던 친구가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모든 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돌이 되어 친구집에 옹기종기 모여 화사한 이야기꽃을 피울 때 당신은 아직도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만난 성가대 오빠를 못잊어 짝사랑만 하고, 회사에서 3년 동안 썸만 타고 있는 김대리와 단 둘이 영화는 커녕 밥 한끼도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말을 붙여볼 용기가 없어서, 그 마음을 확인해 볼 용기가 없어서, 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고백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짝사랑만 하고 있거나, 썸만 타고 있거나, 혼자 이리저리 생각만 많고 마음 속에서 갈팡질팡만 하고 있는 여자들은 사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치고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젊은 처자들에게 이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행동이다.
나는 앞에서도 수차례 말한 바 있다. 연애시장에서 남자에 비해 여자들은 시간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여자의 연애 적령기는 남자의 연애 적령기에 비해 매우 짧다.
남자들은 직장과 사업에서 재정적 충실도를 확보하고, 성실하고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면 40대가 넘어서도 결혼을 전제로 한 20대 여성과의 연애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자들은 회사에서 인정받고 능력있는 여성이라 하더라도 30대가 넘으면 상대적으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남자들에 비해 불리하다.
이것은 배우자에 대해 요구하는 기대 조건이 남자와 여자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한 가정을 충실히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재정적 안정성, 성실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그러한 기대 조건은 30대 40대 남성들이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요건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고상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평판, 도덕적 책임감을 요구한다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로지 신체적 건강함이다.
건강한 자손을 볼 수 있는 신체적 건강성,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는 생식적 건강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남성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여성의 연령대는 압도적으로 20대, 좀 더 넓게 봐서 30대 초반까지 정도가 될 수 밖에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대학졸업후 23세에서 32세까지 10년 정도, 신체적 능력이 우수하지만 연애경험과 사회적 경험이 적어 남자를 보는 눈이 부족한 23세에서 27세까지의 전반기와 다양한 남자들과의 접촉과 연애경험으로 남자를 보는 눈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체적 능력이 쇠퇴하는 27세에서 32세까지 후반기가 여자들의 연애 적령기이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이 짧은 시간을 짝사랑과 애타는 썸질에 모두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여자들의 짝사랑은 무시무시해서 한 남자를 좋아하면 2~3년은 기본이고, 썸 타는 것 만으로도 1~2년은 그냥 보내는데 그런 무의미한 애정행각에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회를 허비해서야 어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남자에 비해 여자들의 연애 적령기가 짧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여자의 연애는 최대한 시간을 아껴주는 시간절약형 연애를 지향해야 한다.
이렇게 아까운 연애 적령기를 쓸데없이 결과도 과정도 없는 짝사랑을 하는 것과 과정만 있고 결과는 없는 썸만 타는 데 허비할 순 없다.
그렇다면 짝사랑의 무한궤도적인 인연의 사슬을 결연히 끊어내고, 연애의 개미지옥인 짝사랑의 무한루프에서 결연히 탈출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온적인 썸타는 관계를 확실하게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아 그렇다. 그것은 바로 행동이다. 당신이 그 남자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마음이 있는데,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3. 연애를 잘 하려면 일단 차이는 것부터 익숙해져야 한다
자, 지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자. “당신은 첫사랑에 성공하셨나요?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당신의 첫사랑이었나요?” 그리고 아빠 엄마 삼촌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에게도 한 번 물어보자. “지금 결혼한 남편이나 부인이 당신의 첫사랑이었나요?”
아마 게중의 99.9%는 자신의 첫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첫사랑에 성공하는 확률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첫사랑은 성공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첫 번째라서 그렇다. 처음하는 것은 누구나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잘 가는 사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잘 해낼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한 아기가 여기 있다고 생각해 보자. 엄마 아빠들은 아기가 처음 한 말이 ‘아빠’였다고 혹은 ‘엄마’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분명한 발음으로 “아빠, 엄마”하고 말하는 아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기들은 ‘아빠,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 전에 무수히 많은 무의미한 말들을 내뱉는다. 우리들은 그것을 ‘옹알이’라고 말한다.
또 아기가 걷는 것을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완벽하게 두 발로 걷는데 성공한 아기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칼 루이스나 밴 존슨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처음에는 계속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했을 것이다.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나 베토벤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피아노를 제대로 연주하고 악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연주자라도 첫 연주곡은 불협화음이고 최고의 화가라고 하더라도 처음에 그린 그림은 낙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 실패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결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유도나 태권도 같은 무술은 처음에 넘어지고 맞는 것부터 시작한다. 낙법과 막기부터 배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화려한 ‘들어 메치기’나 ‘2단 돌려차기’ 같은 고급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연애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를 유혹하는 데 필요한 화려한 기술, 화술과 메이크업이나 밀고 당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연애의 가장 기본은 ‘거절감 극복하기’이다.
연애를 시작하려면 거절감에 익숙해져야 한다. 고백했다가 차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거절을 당신이란 존재에 대한 전인격적 거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연애의 실패에 관한 한 에디슨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실패한 횟수에 대해 작게는 1,200번설, 많게는 7,000번설, 10,000번설이 있는데 1,200번이 맞다고 하더라도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굴하지 않고 발명을 지속해 나가는 에디슨의 자세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런데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다가 실패한 사실에 대해 1만 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1만 가지 발견한 것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러한 에디슨의 논리를 당신에게 적용해 본다면 지금 당신이 한 남자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면 그것은 하나의 연애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지 않는 한 남자를 발견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지금의 수치가 앞으로 성공하는 연애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일단 고백했다가 차이면 그 상대와는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렇게 좋은 상대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내 생애에 이제 다시 연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의 실패 경험으로 더 나은 상대와 더 나은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자, 사람은 성공을 통해 많이 배울까? 아니면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울까?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성공보다는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선 연애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자각했을 것이다. 연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 이러한 1차적 자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충격과 괴로움을 잘 견디어 나가면 앞으로 더 큰 장애물과 고난을 손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이는 경험과 그 충격은 사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지수 중에서 상당히 높은 레벨에 해당된다. 특히 연애를 하다가 겪을 수 있는 많은 장애물과 고통 중에서 이보다 더 고통스런 경험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연애를 수많은 문제들의 산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나가야 결혼이라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인생의 난코스라고 비유하곤 하는데, 고백했다가 차인 고통을 극복한 경험은 난코스 중 상당히 높은 봉우리를 정복한 것으로서 이후의 연애 등정에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나 다름없다.
즉 지금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면 앞으로 왠만한 문제는 문제로 생각되지도 않을 것이다. 에베레스트산이나 K2를 등정한 사람은 한라산이나 백두산 등정은 손쉬울 것이고, 동네 뒷산 정도는 껌 씹는 것처럼 일도 아니게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
젊은 시절 한 때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차인 경험은 여자에게 있어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오히려 여자에게 더 많은 유익을 준다.
우선 조기에 남자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하여 혼자만의 짝사랑과 미적지근한 썸타는 시간으로 낭비할 수 있는 연애 적령기의 소중한 기회를 낭비하지 않게 해준다.
또한 연애에 있어 수동적이기만 했던 여자들에게 연애의 행동력과 주체성을 일깨워 주어 연애의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고백했다가 차인 충격과 고통을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경험치와 노하우, 고통에 대한 내성이 앞으로 더 좋은 남자를 만나 더 풍성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내재적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당장 남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젊은 여성들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고백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대다수 여성들이 먼저 고백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이 이 똑같은 질문을 시한부 상황에 있거나 죽음을 앞 둔 고령자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대부분의 환자와 노인들은 위 젊은 여성들과는 반대로 대답했다고 한다.
그들은 젊었을 때 비록 거절당했더라도 사랑을 고백했던 그 순간들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오히려 마음 속에 좋아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먼저 고백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고 살았던 사실들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